짐작은 의심(疑心)일 수도 관심(觀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눈에서 호기심과 관심을 배운다.
어떻게 바라 보아도 아이들의 눈은 선한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의심 vs. 관심
마이 파더라는 영화를 보았다. 어떤 아버지일까? 어떤 아들일까? 실화라던데 아버지와 아들 둘 사이 어떤 관계가 있어 영화화 되었을까? 성경의 ‘돌아온 탕자’이야기와 같은 아버지의 무한사랑 얘기일까? 아니면 반대로 아버지의 과거 잘못을 이제는 포용하고 용서한다는 자식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야기일까!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아들이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찾는 내용이라던데! 아마 교도소의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 잘못에 대해 과거를 반성하는 그런 뻔한 내용일거야!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서 나의 짐작이 맞으면 “거 봐! 맞잖아! 그렇고 그런 얘기라니까!” 맞지 않으면 “아니구나!”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하여 짧은 시간이 흘렀고, 어는 순간부터는 미치도록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시간 내내 흘렀다. 의심이 관심으로 바뀌어서 일까?
그래도 호기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영화시간 내내 영화 내용이 내 짐작대로 맞아 들어갔다면 관심은 있을 수 없다. 아니 20~30분 정도만 내 짐작대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었어도 아마 나는 잠들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을까?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의심을 갖고 짐작하며 영화를 보았을까? 아니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관심 밖의 것이었을까? 분명 나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덜 보았기에, 또 살면서 배신감은 덜 느꼈을 것이기에 영화의 재미에 대한 의심의 눈은 없었을 것이다. 어린 우리 아이들의 눈과 마음에는 호기심과 관심만 있었을 것이다. 미리 짐작하고 그릇된 잣대로 무언가를 쟤는 의심의 눈초리! 지레짐작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왜냐하면 영화상영 2시간 내내 뚫어져라 스크린을 바라보는 두 녀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짐작은 의심(疑心)일 수도 관심(觀心)일 수도 있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호기심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은 의심(疑心)이다. 또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관심(關心)이라 하는데, 그런 관심(關心)을 불교에서는 한자를 달리하여 -관심(觀心)- 마음의 본 바탕을 바르게 살펴보는 것이라고도 한다. 마지막으로 짐작은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호기심, 의심(疑心), 관심(關心), 또 다른 관심(觀心), 그리고 짐작을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분명 짐작은 의심(疑心)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본 바탕을 바르게 살피고자 하는 관심(觀心)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현명한 관심(觀心)과 애정(愛情)을 가진 아빠가 되리라!
호기심 가득 우리 두 녀석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재미 없었을 경우 어떨까? 재미있다고 얘기한 엄마와 아빠에게 실망과 배신감이 있을 것이다. 분명 재미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호기심으로 관심을 갖고 열심히 보았을 텐데 별 재미가 없었다면 배신감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의심(疑心)을 품고 지레 짐작하는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주변의 모든 잘못과 부정 그리고 사기를 가릴 수는 없다. 의심을 품게 하는 그 어떤 것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듣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알게 모르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부정과 잘못에 대한 배신감, 그런 배신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의심(疑心)과 잘못된 지레 짐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의 호기심이 잘못된 의심(疑心)으로 바뀌지 않고, 호기심에서 관심(觀心)으로 바로 가게 할 수는 없을까? 설령 부정적인 의심(疑心)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올바른 긍정적 관심(觀心)으로 바꾸어 줄 수는 없을까? 깨닫게 할 수는 없을까? 분명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부모인 나부터 올바른 관심(觀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아이의 마음을 아니 주변의 나와 관계된 모두를 바르고 제대로 헤아려 보는 관심(觀心)과 사랑으로 보려는 애정(愛情)을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내 아이들도 그것을 따라 하리란 생각이다. 내 잘못된 의심(疑心)을 호기심인 관심(關心)으로 바꿔 주고 또 그런 관심(關心)을 또 다른 현명한 관심(觀心)으로 깨닫게 하여 차가운 냉소가 아닌 따뜻하게 흐르는 눈물을 느끼게 해준 영화에 진정 감사한다. 반드시 긍정으로 헤아리는 현명한 관심(觀心)과 애정(愛情)을 가진 아빠가 되리라!
바라보는 시선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