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Self Acdemy

토론이 내게 주는 선물 -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행복합니다... 2007. 10. 6. 08:44

2007.10.05

버리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착각해 아픈가 보다.

버리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용기인데도...!

쟤가 얘기하는 중에도 네가 할 얘기 생각하고 있잖아.

내 스스로 나를 혼 내고, 내 스스로내게 혼이남에도...!

아픔의 조절 영역

팀 미팅의 첫 경험은 많이 아팠다. 또 많이 아프게 했다.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나와 논쟁한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었다. 그렇게 조금 조금씩 경험을 쌓아 가면서 나는 뇌 한 구석에 아픔의 조절 영역을 만들어 갔다. 아니 저절로 생겨난 느낌인 것도 같다. 요즘은 논쟁이 벌어질 때면 내 머리 속 아픔의 조절 영역이 동작을 한다. 오늘도 그랬다. 여러 번 그랬다.

버리는 것 vs. 포기하는 것

팀원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주변의 다른 팀원들도 동의한다. 하지만 난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어 반대했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면서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순간 내 아픔의 조절 영역은 계속해서 되 뇌 인다. 맞아! 내걸 버리자! 내걸 버리자! 내걸 버리자! 그래도 약간은 맘이 아프다. 버리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아픈가 보다. 분명 쓸모 없어 버리는 것인데 내 머리는 우습게도 내 마음에게 포기한 것이라고 속삭인다. 이 바보야! 네 말이 무조건 옳아! 들을 거 없어! 계속 얘기해! 무엇이 필요할까? 논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절한 눈짓 vs. 구체적 표현

잠시 뒤 또 다른 주제로 내 생각을 얘기한다. 한 사람이 내 얘기에 반대한다. 그런데 이번엔 주변의 팀원들이 내 생각에 표를 던져준다. 또 한 사람의 외톨이가 생긴다. 그러자 내 머리 속 아픔의 조절 영역이 또 소리친다. 쟤 얘기 좀 잘 들어봐! 잘 듣고 얘기해! 다시 생각해 봐! 하지만 이미 상대에게 아픔을 준 느낌이 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내 얘기에 동의해줘! 라는 간절한 눈짓을 보낸다. 아주 간절한 눈짓을…. 무엇이 필요할까? 구체적인 의사표명과 헤아리는 경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1 : 2

또 팀원 중 두 사람이 열띤 논쟁을 벌일 때 끼어들면, 논쟁을 벌이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아픔을 느낀다. 1:2니까 당연 아프고 힘들다. 정말 웃기는 것은 그 두 사람의 얘기와 전혀 다른 주장으로 끼어들면, 그 두 사람은 둘의 논쟁을 슬며시 접고 날 공격한다. 갑작스런 황당함이 아닐 수 없다. 그 두 사람이 논쟁으로 이미 서로 아팠기에 나를 통해 그 아픔을 서로 치유하려 한다. 어찌 해석해야 할까?

논쟁이어도 의미가 있다.

대개 논쟁은 의미 없는 소모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팀은 많은 연습이 되어서 인지 의미 있는 토론이 되고 있다. 나를 비롯하여 서로가 서로에게서 의미를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눈다. 약간의 마음은 아프지만, 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팀 토론을 통해 주제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 과제의 윤곽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느낌이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내 머리 속 아픔의 조절 영역이 나를 혼낸다. 내가 지고 상대가 이길 경우는 그만해! 이제 충분히 네 마음 알아! 그러니 그만 됐어! 진정 중요한 목적을 생각해! 그리고 그 진짜 목적과 관계 없다면 아파하지 말고 버려! 버리는 것은 포기가 아니야! 버리는 것은 용기야!” 또 반대로 내가 이기고 상대가 질 경우는 쟤 마음 상처 받고 있어! 많이 아플 거야! 그만해! 쟤 얘기를 정말 잘 들었니? 아니야! 넌 듣지도 않고 네 얘기만 하고 있어. 쟤가 얘기하는 중에도 네가 할 얘기를 생각하고 있잖아! 그만하고 잘 들어봐! 헤아림이 경청이야!” 이렇게 내 스스로 나를 혼 내고, 내 스스로 나에게 혼이 나도 버림과 경청이 잘 안 된다. 내 혀의 콘트롤이 잘 안 된다. 그래도 난 포기 않고 노력하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요사이 매일의 토론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