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두루미
2008.01.24 (목)
“
지난 밤 함께 가자고 하고는 아침이 되자 차도 없는데
혼자 가라고 하는 엄 대리에게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사실 속으로 신 웃음이 났다.
”
고마움이 짜증으로
밤샘 Clean-Up 야간작업 후 새벽이다. 오랜만에 한 야간작업이어서인지 정말 피곤하였다. 작업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려고 준비 하는데 엄 대리가 내 옆에 다가와 지방에서 올라 온 사람들도 있고 하니 그냥 여관에서 자자고 한다. 순간 짜증이 났다. 지난 밤 자신의 차로 가자고 해서 고마웠고 또 그 덕에 내 차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집에 가지 말고 그냥 성남의 여관에서 자자고 하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현업직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라고 하니 가자고 조를 수도 없었다. 오히려 현업의 직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내가 미안해 해야 했다. 아내와 약속도 있고, 아이들 공개 수업도 보고 싶고 해서 미안했지만, 난 그냥 집에 간다고 하고, 혼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너무도 멀고 날씨도 무척 추웠다.
여우와 두루미
지난 밤 함께 가자고 하고는 아침이 되자 차도 없는데 혼자 가라고 하는 엄 대리에게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사실 속으로 신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에 엄 대리에게 내 차로 가자고 했다가 사무실에 일이 있어 못 가게 되었다고 혼자 가라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땐 내가 그에게 불편을 겪게 했는데, 오늘은 그로 인해 내가 불편을 겪게 되었다. 정말이지 지난 월요일 엄 대리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척 짜증났을 그 기분을 당하고 보니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어릴 적 재미있게 읽은 ‘여우와 두루미’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여우에게 초대받은 두루미는 접시 위의 음식을 먹지 못해 약 올라 했고, 반대로 두루미에게 초대 받은 여우는 호리병의 음식을 먹지 못해 약 올라 했던 그 이솝 우화, 마치 나와 엄 대리가 그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상대에게 호의를 전했다면, 그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리 호의였다 할지라도 불쾌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지난 월요일 아무런 느낌 없이 사무실에 일이 있어 못 가게 되었다고 당연시 하며, 쉽게 말하였었는데, 오늘은 엄 대리가 나에게 “아! 미안하네!” 라고 한다. 짜증이 나면서도 기분이 정말 묘했다. 말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경험한 하룻밤이었다.